이야기는 도성의 시전 포목상에서 시작합니다. 고려 때는 상업이 발달해서 중동(中東) 지방의 배도 벽란도에 들어왔지만, 조선이 유교를 국교로 하면서 상업은 천시되었습니다. 그래도 종로의 시전상은 왕실에 물품을 공급하고 있기에 양반들도 무시할 수 없었지요.
이렇게 재력 있는 부자 상인에게도 고민은 있었으니 대를 이을 아들이 없이 딸 하나만 있었던 것입니다. 주위 사람들은 물론이고 아내마저 첩을 들여 아들을 보라고 했지만, 가정 분란이 싫었던 상인은 외동딸을 애지중지 길렀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누가 그 외동딸과 혼인해서 많은 재산을 물려받나 호기심을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말합니다.

“비단전 장 부자댁에서 매파가 왔는데 어찌하실래요? 작은아들이 인물이 훤출하다고 하던데.”
“응, 나도 잘 아는데 인물만 좋지 머리가 부족해.”
“그래요? 그러면 철물점 박 부자 큰아들은 어떻겠소? 머리가 비상하던데.”
“응, 그 아이는 머리는 좋은데 바람기가 있어.”
상인은 사랑하는 외동딸을 시집보내기 위해 마땅한 신랑감의 뒷조사를 철저히 했습니다.
같은 시전상인뿐 아니라 양반집에서도 며느리 삼겠다고 은근히 접촉해 오고는 했습니다. 상인이 천한 신분이긴 하지만 양반집 양녀로 들어가 신분세탁을 한 뒤에 시집오면 문제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인은 모두 거절했습니다. 자신의 딸이 용모가 뛰어나고 머리도 영리하지만, 상대가 노리는 것은 딸이 아니라 재산인 줄 뻔히 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또 한 해를 넘겨 섣달이 되었습니다. 상인은 친척, 친지를 모두 모아놓고 크게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신랑을 정했다고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신랑감은 누굴까요?
“내 사위는 우리 가게 용칠이다.”
모인 사람들은 자기 귀를 의심했습니다. 용칠이는 포목점에서 일하는 일꾼으로 몇 년 전 고아가 되어 떠도는 것을 상인이 거둔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상인은 하필 거지로 떠돈 아이를 사위 삼느냐고 묻자 재산을 바라고 혼인을 맺는 것보다 데릴사위를 맞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문은 순식간에 도성 안에 퍼져 모두 신랑을 부러워했습니다. 해가 바뀌자 상인은 호화판으로 초례청을 차렸습니다. 풍악을 울리며 혼인식을 거행하고 첫날밤이 되었습니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아 축복하는 듯했으나 신부의 비명이 적막을 깼습니다.
“아버지, 엄마. 신랑이 죽었어요!”
딸이 울면서 말하자 급히 방으로 들어가 보니 신랑이 누운 채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도 숨은 끊어지지 않아 급히 의원을 불렀습니다.

이경화란 이름의 명의가 진찰하더니 상인에게 대청에 돈궤를 꺼내 놓고 동네 과부들을 모두 불러모으라는 처방을 내렸습니다.
의아했지만 당대 최고의 의원의 말인지라 시키는 대로 과부들을 모았습니다. 이경화는 과부들에게 곡(哭)을 하라고 시켰습니다. 크게 우는 과부에게는 돈을 더 많이 주겠다고 했습니다.
우는 소리가 크고 처절한 과부 앞에 돈을 던져놓자 통곡에 도성이 떠나갈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돈을 받을 욕심에서 울기 시작했지만 처량한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울었습니다. 급기야 가슴을 쥐어뜯으며 발광하며 데굴데굴 구르는 과부도 있었습니다.
이런 해괴한 행동에 구경꾼들이 구름처럼 모였는데 신랑이 푸~ 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경화 의원은 간단한 처방을 하며 쉬도록 했습니다. 구경 왔던 몇 명의 의원들이 묻습니다.
“용하시구료. 이건 무슨 처방이요?”
물으니 이경화 의원이 대꾸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고아가 되어 거지로 떠돌다 자애로운 상인의 밑에서 일했는데 꽃같이 예쁜 주인집 딸과 혼인하고 재산을 물려받게 되었으니 기가 막힌 것이라고. 그래서 한 많은 과부의 울음소리로 콱 막힌 기를 뚫은 것이라고요.

최영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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