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 가문돌은 커다란 숭어를 들고 초막으로 들어왔습니다.
물을 펄펄 끓이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는데 돌미륵이 입을 삐죽거리더니 말했습니다.
“풍문, 심심하구나. 죽이 다 끓어도 나는 먹지 못하니 재미있는 얘기나 해다오.”
저승세계가 궁금하지만 좀처럼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니 어색함을 깨기 위해 입을 열었습니다.
“선생님, 섬을 다스리는 신령님은 왜 백마를 좋아하지요? 여기 백마도도 신령이 백마를 좋아하나요?”
제 물음에 토정 선생은 입을 씰룩거리더니 퉁명스럽게 대답합니다.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 이런 조그만 섬에 무슨 신령이 있어.”
아, 그렇구나.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섬이니 신령이 왜 오겠나. 생물이라야 백마 열 마리와 시커먼 가문돌 뿐인데.
신령도 사람이 살아야 제도 지내고 먹을 것도 생기는 법이다.
“으흠, 시작입니다. 어느 해변가에 왜구들이 들이닥쳤습니다. 순식간에 마을이 초토화되었습니다. 불시에 당해 피해는 엄청났습니다.”
나는 앞으로 일 년 후에 벌어질 끔찍한 임진왜란을 머리에 떠올리며 말을 이었습니다.

왜구가 상륙했다는 것을 알게 된 근처 동네 사람들은 모두 짐을 꾸려 피난을 떠났습니다.
부자들은  세 척의 배를 구해 섬으로 피난했습니다. 왜구의 침입으로 섬을 비우는 정책을 썼기에 머물 곳은 충분했습니다.
초막을 짓고 남자들은 낚시하고 여자들은 지천으로 깔린 산열매를 따서 가지고 간 식량으로 석 달을 지냈습니다.
이러던 어느 날 쪽배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주인어른, 왜구가 쫓겨났습니다아~”
하인이 배 위에서 육지 사람들에게 소리쳤습니다. 그 말에 삼십여 명이 넘는 사람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이들은 다시 짐을 꾸려 아침에 떠나기로 했습니다. 밤에 술판을 벌이고 잠자리에 든 주인이 꿈을 꾸었습니다.
흰 수염이 턱까지 내려온 신령이 말했습니다.
“나는 이 섬의 주인으로 그동안 너희를 보호했으니 백마를 놔두고 가라.”
하고는 사라졌습니다.
잠에서 깬 주인은 동이 틀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기 가족들을 불러놓고 꿈 이야기를 하고 말을 두고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큰아들이 반대합니다. 육지에 가면 짐을 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옥신각신하는데 풍랑이 일어 배가 뜨지 못하게 되어 하루 더 머물기로 했습니다.
그날 밤 또 신령이 나타났습니다.
“오냐, 너희가 은혜를 모른다 이거지. 두고 봐라! 절대 섬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호통을 치고는 사라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 주인은 백마를 놔두고 가려 했으나, 큰아들은 얼른 고삐를 쥐고 배에 올라탔습니다.
주인은 찜찜했지만, 아들이 고집을 부리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풍랑도 없어 세 척의 섬을 떠나 막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는데 백마를 태운 배는 뱅뱅 제자리를 맴돌 뿐이었습니다. 뒤늦게 겁에 질린 큰아들은 백마의 다리를 묶어 바다에 던졌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신령의 노여움을 산 배는 끝내 소용돌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침몰했습니다.
뒤늦게 두 척의 배가 사람을 구하려고 했지만 모두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으흠, 재미있는 이야기구나. 고집을 부릴 데 부려야지. 원.”
토정선생은 측은한지 혀를 찼습니다. 실화인지 눈치채신 겁니다.

내 재담이 끝났을 때 어죽 냄새가 구수하게 풍겨왔습니다.
“풍문아, 모처럼 이곳에 왔으니 가문돌에게 재미있는 얘기 좀 해야겠구나. 네가 한번 하면 내가 뒤를 이으마.”
토정 선생님 말씀으로는 가문돌이 자꾸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보채는데 자기는 한번 죽은 영혼이라 살았을 때 일이 가물가물 하다는 것입니다.

최영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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