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큼
                         문정영  
 

비 그치고 돌멩이 들어내자

돌멩이 생김새만한 마른자리가 생긴다.

내가 서 있던 자리에는 내 발 크기가 비어 있다.

내가 크다고 생각했는데 내 키는 다 젖었고

걸어온 자리만큼 말라가고 있다.

누가 나를 순하다 하나 그것은 거친 것들 다 젖은 후

마른 자국만 본 것이다.

후박나무 잎은 후박나무 잎만큼 젖고

양귀비 꽃은 양귀비 꽃만큼 젖어서 후생이 생겨난다.

여름비는 풍성하여 다 적실 것 같은데

누운 자리를 남긴다.

그것이 살아가는 자리이고

다시 살아도 꼭 그만큼은 빈다.

그 크기가 무덤보다 작아서 비에 젖어 파랗다.

더 크게 걸어도

더 많이 걸어도

꼭 그만큼이라는데

앞서 빠르게 걸어온 자리가

그대에게 먼저 젖는다

 

[프로필]
문정영 : 전남 장흥, 건국대 영문학과, 시산맥 발행인, 시집[낯선 금요일]외 다수

[시 감상]
살면서 딱 그만큼이라는 것에 만족해야 할 때가 많다는 알게 될 때, 그때가 어쩌면 인생의 정점인지도 모른다. 그만큼의 간격을 지키는 일이 수월하지 않다. 그만큼을 유지하거나 그만큼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딱 그만큼의 자릴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이라도 만족할 수 있다면 축복받은 것이다. 매우 큰 축복을...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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