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들은 웅성거렸습니다. 장사에는 신의(信義)가 으뜸입니다. 속임수로 잠시 사람을 속이고 작은 이득을 얻을 수 있지만, 신의가 없다는 것이 소문나면 고객은 물론이고 같은 동료에게도 외면받기 때문입니다. 분위기를 봐서는 두둑하게 재담비가 나올 것 같아 순서를 바꿨습니다.

“다음은 김포 어느 동네에 수재로 알려진 박씨와 양씨 선비 두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공부를 잘해 과거 시험에 철썩 붙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시험 볼 나이가 되자 도성에 가서 시험을 보는데 양선비가 처음 시험부터 철썩철썩 엿가락 붙듯 붙어 대과까지 합격한 것에 비해 박선비는 초시를 몇 번 떨어지고는 겨우겨우 꼬부라진 노인이 고개 넘듯이 생원에 합격한 후에 삼 년마다 돌아오는 대과를 보았지만, 쭈르르 낙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양선비는 조정의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쳐 마침내 평안감사가 되었습니다.”

평안 감사라니 상인들이 두런거립니다. 벼슬길이 막힌 평안도는 예부터 상업이 득세하는 지역으로 여기 있는 상인들은 한두 번 다녀오지 않은 이가 없으니까요. 누군가 소리친다.

“피양감사는 벼슬쟁이면 꼭 한번 하고 싶은 게 앙이오?”

평안도 상인이 끼어 있었나 봅니다. 여기저기서 옳거니 하며 추임새를 넣습니다. 평안감사가 되면 거두는 조세가 많아 일정액수만 조정에 바치면 나머지는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게다가 감영이 있는 평양에는 미인기생이 많아 유흥을 즐길 수 있어 모두 원하는 자리입니다.

“네, 그렇지요. 겨우 생원은 되었지만 끝내 벼슬길에 오르지 못한 박선비는 양반 지위는 보존했지만, 가난에 허덕여야 했습니다. 딸이 혼기가 찼지만, 혼수를 마련할 길이 없는데 친구가 평안감사가 되었다는 말에 도움을 청하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어려서 헤어지고 처음 찾으니 서리를 통해 인사장을 양감사에게 보냈습니다. 겨우 만나 형편 이야기를 하니 반기는 기색이 없고 저녁밥이라고 차려온 것도 소찬이었습니다. 박선비는 냉대에 화가 났지만 꾹 참았는데 감사는 서리에게 숙소를 마련하라고 하고는 휭하니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박선비는 자신이 출세를 못해 불알친구도 박대하는구나 싶어 한탄하고 성 밖 서리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습니다. 초라한 이불 안에 들어가 분노를 삭이며 한탄하고 있는데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립니다. 살짝 방문을 열고 보니 낮은 담장 너머로 소복을 입은 아리따운 과부가 달빛 아래에서 빨래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박선비도 사내라고 외지에 나오니 기분이 야릇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서리가 야참을 가져오길래 이웃집 여인의 사정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서리의 중매로 이웃집 과부 여인을 밤중에 만나게 되었는데 상세한 이야기는 안 하고 얼버무렸습니다. 어쨌든 남녀는 합방하기 위해 과부가 방에 들어온 이야기까지 하자 주위는 숨을 죽이며 듣고 어떤 이는 흥분을 참다 딸꾹질까지 했습니다.

“박선비가 막 바지를 내리는데 철커덕 소리와 함께 거시기에 묵직한 것이 매달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는 쏜살같이 방문을 열고 과부가 도망쳤습니다.”

박선비 아랫도리에 자물쇠를 채운 것입니다. 아침까지 애타게 서리를 찾았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고 다른 서리가 와서 삼베 열 개를 내놓으며 여비에 쓰라고 했다고 하며 사라졌습니다.

“허허, 망측한 일이로다. 이게 뭔가, 이게.”

박선비는 출세 못한 자신을 한탄하며 어기적거리며 자기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보니 이사 간 것이 아니겠습니까? 황망해하니 동에 사람이 새로 이사한 큰 기와집으로 안내했습니다. 아내는 평안 감사가 보내온 패물과 옷가지 그리고 생활비로 은괴가 가득한 궤를 보여주며 평안감사의 아량에 감사를 표시하고는 열쇠 한 개를 내놓았습니다. 이건 뭔지 모르겠다고. 그제야 친구의 짓궂은 장난을 알고 철컥하고 자물쇠를 열었습니다. 나중에 도착한 편지를 보니 과부가 아니라 기생으로 불알 친구에게 장난 좀 쳤다고 쓰여 있다고 합니다.

최영찬 소설가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