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종 광
김포우리병원
기획관리실장

벚꽃 잎이 바람에 흩날릴 때

꽃의 계절이다. 산과 들이 온통 꽃동산이다. 나무마다 싹이 트고 거리마다 봄이 핀다. 아직 기온이 높지 않고 일조량이 적을 때 피는 꽃은 개나리, 붉은 철쭉, 가지마다 팝콘처럼 터지는 벚꽃이다. 계양천을 비롯, 김포우리병원 가로수도 매년 이맘때면 만개한 벚꽃이 장관을 이룬다. 특히, 김포우리병원의 럭셔리한 산책로 ‘시(詩)가 있는 풍경’은 만발한 벚꽃으로 하얀 여백의 도화지 위에 흰색, 핑크색 물감을 흩뿌려 놓은 듯 화사하다.

연인과 친구들, 뛰노는 아이들, 유모차를 밀고 나온 젊은 부부, 모처럼 여유를 누리는 중년과 잠시 세월의 무게를 내려놓은 노년의 미소가 꽃그늘마다 눈부시다.

사계절이 확연한 우리나라에서 봄철에만 볼 수 있는 벚꽃이 상징하는 분위기는 ‘설렘’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보는 벚꽃은 평안과 여유를 가져다준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 목련, 철쭉, 튤립. 공통점이라면 첫째, 봄에 피는 꽃이고 둘째는 잎이 아닌 꽃이 먼저 핀다는 것이다.

이 시기가 조금 지나 피는 여름꽃인 장미, 아카시아, 감, 밤, 작약, 백합, 찔레꽃 등은 잎부터 피어난 후에 꽃이 핀다. 봄꽃은 여린 듯 수줍은 듯 곱고, 여름 꽃은 짙은 색상에 향기가 강하다. 봄보다는 여름에 내리쬐는 햇빛이 강해서인지 꽃의 향기는 여름 꽃이 더 진하다.

으레 그렇듯 지난 겨울도 꽤나 추웠다. 다시는 봄, 여름이 오지 않을 것처럼 찬바람에 기온이 급강하해 이대로 겨울왕국 세상이 되는 게 아닌가 하고 염려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걱정은 한낮 기우에 불과했고, 거짓말처럼 벚꽃과 함께 순리대로 봄은 어느새 우리 곁에 왔다. 어느 음유시인은 ‘봄이 스프링 튕기듯 온다(SPRING is spring)'고 했다. 그래서인지 통통통 튀면서 봄이 온 듯 싶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도 했다. 예전에는 차가운 봄바람 속에 봄인 듯 하다가 훌쩍 무더운 여름으로 곧바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봄은 제대로 절기를 알리며 소리치듯 봄의 절정을 느끼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듯하다.

홍도평을 앞마당 삼아 자리한 김포우리병원에도 봄바람이 분다.

병원을 찾는 환우들이 입은 옷차림에서부터 입원병동의 환자 얼굴에까지 온통 봄기운이 배어있다. 두툼한 오리털 점퍼가 어느새 연분홍색 니트로, 연한 머플러로 바뀐 것은 봄이 주는 자연스런 연출이다. 아침 병동을 라운딩하다 보면 활짝 웃는 간호사들의 표정에서, 환자 상태를 정성껏 진료하는 진료과장님들의 얼굴에서도 밝고 건강한 모습의 표정을 읽는다. 봄을 전하는 전령사들처럼 겨우내 움츠렸던 침상에 기지개 켜듯 희망과 약동의 봄기운을 불어 넣고 다닌다.

“오늘 얼굴 화색이 밝아졌습니다.”, “많이 좋아졌어요. 이 삼일후면 퇴원하실 수 있겠네요.”, “감사합니다.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주치의와 환자 간에 주고받는 대화가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머금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2~3주 병원에 있다 보면 환자도 그렇고 보호자도 힘들고 지치는 게 대부분이다.

가급적이면 병원에 오지 않는 게 좋겠지만 연세 드신 어르신들 입장에서는 수시로 건강도 체크하고 더 큰 질환으로 이어지기 전에 소소한 병은 즉시 치료하고 간호 받는 게 더 필요하므로 어쩌면 병원이 가까이 있다는 건 축복이고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흔히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관계를 ‘인연(因緣)’이라 한다. 사회생활의 기본은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우리는 그 만남을 결코 과소평가한다던지 대충 그러려니 해서는 안 된다.

인연이 소중한 끈이 되고 아련한 정으로 이어져 평생을 좋은 마음으로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우연히 온 인연을 소중히 보듬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우리가 잘 아는 피천득의 <인연>이라는 수필 속에서는 스무 살 적의 젊은 시절에 일본에서 만난 앞마당에 핀 작약 꽃에 비유한 미모의 여인 아사코를 그리워한다. 붓 가는 대로 쓴 수필이긴 하지만 오늘날 아름답고 애틋한 인연의 서곡이 되고 있다.

또 나사렛이 고향인 성직자 예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예루살렘에서 순교하지만 주 활동은 호숫가가 있는 갈릴리다. 여기서 운명적으로 어부인 12사도 중 한 분이신 시몬 베드로를 만나 천국의 열쇠를 그에게 맡기는 인연을 수놓는다.

반대로 악연(惡緣)도 있다. 프랑스 왕조 시대인 17세기 중엽 무렵 넓은 광장에서 루이16세와 그의 부인 앙리 앙뚜아네뜨가 탄 마차를 기다리는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생도 대표로, 환영문을 읽기 위해서다.

마침 그날따라 비가 세차게 내리는데 왕과 왕비가 탄 마차는 약속시간 보다 2시간이 지난 후에 도착했고, 하염없이 기다렸던 생도는 빗속에서 환영문을 낭독했지만 끝내 마차의 창문은 열리지 않았고 무심하게도 마차는 떠났다. 훗날 환영문을 낭독한 생도 학생의 이름은 로베르스 피에로로 루이16세 부부를 단두대에 올려 처형시키고 나폴레옹에게 프랑스혁명의 발판을 마련한다.

이처럼 인연과 악연은 종이 한 장 차이로 시대에, 생각에, 처신에, 분위기에 따라 각각 행복과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김포우리병원과 인연을 맺은 지 1년여가 지났다.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큰 인연 보람찬 일터!’를 새로운 목표로 주어진 틀에서 성실과 책임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한다는 각오다. 무엇을 하던 간에 중요한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부단한 자기 노력을 할 때 보람과 성과는 이어지는 것이라는 순리를 바탕으로 자만하지 않고 겸손과 아량으로 열심히 노력하도록 할 것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병원 주변을 한 때나마 화려함으로 분위기를 아름답게 달궜던 벚꽃이 지며 아쉬운 듯, 아니면 내년을 기약하려는 듯 벚꽃 비를 휘날리고 있다. 언제까지 지지 않고 많은 상춘객들에게 사랑을 받고 예쁜 자태를 맘껏 뽐내고 싶었지만, 시간의 흐름에는 어쩔 수 없이 바람결 타며 힘 없이 꽃비를 쏟아낼 수 밖에 없다. 이는 자연의 순리인 듯 싶다.

우리내 인생사도 이와 무관치가 않다. 한 때나마 화려했던 열정과 위치도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중·노년기에 들어서서는 다소 주춤하고 의지가 식기 마련이다. 자연에 순응하는 것처럼 이는 거부할 수 없는 당연한 과정이다. 아무리 먹어가는 나이를 붙잡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고장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노래 가사처럼 말이다.

이 봄, 잠시라도 꽃구경을 나가면 좋겠다. 세상이 어렵고 힘든데 무슨 꽃 타령이냐 하겠지만, 겨울철 잘 이겨낸 우리에게 주는 자연의 선물이면서 무더운 여름을 잘 이겨 내라고 우리 스스로에게 주는 응원이라 생각하면 어떨까.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