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룡 
수필가. 세무사
경영학박사
전)명지전문대학교
교수

얼마 전 주치의로부터 ‘포카리스웨트’ 같은 이온음료를 자주 마시라고 권유받았다. 그래서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그걸 사기 위해 가까운 슈퍼마켓에 들려, 음료수 코너로 갔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여 점원에게 ‘포카리스웨트’가 어디 진열되어 있느냐고 물어 봤다. “그건 요즘 입점되지 않아요.”라고 그녀는 대답했다. 일본 상품 불매운동에 호응하기 위해 슈퍼마켓에서 아예 갖다놓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나는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포카리스웨트’라는 음료가 일본 제품이라는 것도 그때서야 처음 알게 되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여기까지 왔구나’ 하고 새삼 놀랐다. 혹시나 해서 가까운 편의점에 들어가서 찾아보았으나 거기서도 역시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편의점 주인에게 다른 이온음료가 있느냐고 물으니 ‘파워에이드’ 라는 파란색 음료수 한 병을 골라주었다. 그건 미국 제품이란다.

일본이 우리의 수출 주력 제품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에 필수적인 소재(素材)를 수출 규제한 데 대한 보복으로 정부가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시작했을 때, 나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장 경제와 자유무역을 신봉하며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쳐온 사람으로서 지극히 시대착오적이고 감정적인 그런 조치를 당연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동서 냉전시대가 끝난 지금은 인력과 상품이 국경 없이 흐르는 세계화의 통상 시대가 아닌가? 이런 시대에 특정 국가를 상대로 경제 전쟁을 벌이면 우리의 이미지를 편협하고 국수주의적인 것으로 만들게 될 뿐 아니라 수출 주도로 살아가는 한국의 국제적인 신뢰를 손상시키게 됨은 물론이다.

품질과 가격의 비교 우위를 따져보고 어느 나라 소재나 기재든지 수입, 조립하여 더 높은 부가가치를 지닌 상품으로 제조하여 수출하는 국제 분업화 시대의 경쟁에 따라가기 어렵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에 일본의 핵심 소재 수출 규제에 원인을 제공한 것은 우리 쪽이 아니던가. 그러니까 일본의 수출 규제의 원인은 두 가지다. 첫째는 문재인 대통령 정부가 아베 수상의 일본 정부와 박근혜 정부 사이에 위안부 문제를 최종 매듭짓기 위해 어렵게 도출한 위안부 문제 협약을 백지화한 것으로 안다. 다른 하나는 문재인 정부가 한일 국교정상화 협정을 어기고 대법원이 내린 세계에 수치스러운 징용 배상금 판결을 방치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국교 정상화 협정엔 징용 배상금 문제는 우리가 받은 청구권 자금으로 우리 정부가 포괄적으로 해결하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은지 모르겠다. 그러므로 한일 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외교적 해결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일본의 소재 수출 규제를 풀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문제는 통치권자의 통근 결단 하나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집권세력은 그런 간단하고 극명한 길을 선택하지 않고 국민을 감상적인 반일(反日) 캠페인으로 몰아넣어 일본 상품 사지 말고 일본 관광 가지 말라고 부추기고 있다.

대통령은 지난 8월 초 일본과의 경제 전쟁에 이길 수 있다는 또 다른 방안이라는 것을 내놓았다. 즉 남북 간 경제협력을 통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가 단숨에 일본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공언했다. 그는 일본의 경제가 우리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경제 규모와 내수 시장이라고 본 것이다. 비록 남북의 인구를 합해 7천 6백여 만이 되어 내수 시장이 확대된다 해도 인구 1억 2천 7백여 만명이나 되는 일본의 내수 시장과는 차이가 크다. 그리고 2017년 현재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조 7천억 달러로 세계 12위인데 비해 일본은 4조 8천억 달러로 세계 3위의 경제대국으로 랭크돼 있다. 한편 2016년 한국은행이 추계한 북한의 국내총생산은 우리보다 약 46배에서 50배 낮은 것으로 돼 있다. 우리의 개인별 총소득은 3만 2천 달러인데 북한의 그것은 약 565달러, 세계 181위로 아직도 전화에 시달리는 아프가니스탄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세계 최빈국 수준국과의 경제 협력으로 어떻게 세계 제3위의 경제대국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단숨에 낙후된 북의 경제를 끌어올리기에도 장구한 시간과 천문학적인 거액을 쏟아 부어야 할 터인데 말이다. 게다가 사회주의 계획경제로 나태해진 동력을 잃은 인민을 경쟁적인 자유 시장 경제의 시민으로 재교육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게 뻔하지 않은가. 그리고 북한의 비핵화는 아직 한 치의 진전도 없다하지 않은가. 유엔의 대북 경제제재가 진행되는 가운데에도 북한이 미사일을 마구 쏘아대고 있는 현재 평화경제라는 발상 자체가 아득한 잠꼬대 같은 비현실적인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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