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적

 

김학중

 

폐차장에 들어선 차들은

죽음에 이르러서 자신의 천적을 알게 된다고 해요

차를 부숴본 사람들만이 아는 비밀을

살짝 알려드릴게요. 앞 유리를 부수고

보닛을 찌그러뜨릴 때쯤이면

태어나 그처럼 맞아본 적 없는 차들은

백미러를 보며 길을 그리워한대요

길이 방목해 키우던 그 시절

세상 그 어디에라도 달려갈 수 있을 것 같던 그때를

회상에 빠진 헤드라이트가 그렁거리는 순간

차의 숨통을 끊어주는 게 폐차장에서 하는 일이래요

그러면 찌그러진 차체에 천적의 무늬가 떠오른대요

길의 무늬가 소름 돋듯이 뜬대요

계기판의 주행거리가 단지

오랫동안 길에게 쫓겼다는 증거였던 거죠

질주를 충동질하는 길이

후미등을 흉내 낸

빨간 신호등으로 자신을 길들여왔던 거죠

먹지도 못 하는 깡통을 만들어내는 천적 따위는

천적 축에 못 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폐차를 해본 사람은 잊지 않는대요

언제나 길은 제 위를 달릴 새 차가 필요하단 걸 말이에요

 

은밀한 포식을 즐기고 있는 아스팔트 도로

그 혓바닥 위로 당신도 막 걸음을 옮기고 있군요

 

프로필

김학중 : 서울 출생, 2009 (문학사상) 등단

시 감상

먹이 사슬에서, 잡아먹히는 생물에 상대하여 잡아먹은 생물을 천적이라고 한다. 쥐와 고양이 같은 관계다. 살면서 무수하게 많은 천적을 만나게 된다. 특별히 나보다 더 많은 재주가 있다거나 더 많이 무엇을 한 것이 아닌데도, 그 앞에만 서면 움츠려 든다. 나와 무엇이 다른지 곰곰이 생각하다 문득, 아! 나의 천적은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든다. 한 달 남은 한 해, 내년엔 기필코 나를 이겨봐야겠다.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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