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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흔든 한 문장] 장후용

기사승인 2020.02.13  10:5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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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후용 시인,
(사)김포문인협회 회원
(사)한국문인협회중앙회 문학치유위원
(사)국민생활건강진흥원 원장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 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

- 황동규 시인의 ‘시월’ 中 -

 

시인은 말하기를 “시적 자아는 자신보다 윤리적인 쪽으로나 지적으로나 미학적으로 한 단계 위에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시적 자아와 대화하다보면 자신도 올라가고 따라서 시적 자아도 높아질 수 있다”고 말한다. 대화를 통해 자신을 희생하며 서로를 섬기는 일은 겸손이 낮아져 떨어지는 것이며 떨어질 때를 놓치는 일이야말로 교만하고 초라한 일임을 일깨워주는 이 문장 때문에 나는 좀 더 겸손한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

떨어지며 낮아지는 것은 결국 어디엔가 미치는 일이다. 바람이 전혀 불지 않는 날, 살랑이며 떨어져 내리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향수에 젖는 일은 모든 시인들이 자신의 시적자아를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생의 아픈 운동성이다. 생은 삶의 길이며, 삶은 그 길 위에 쌓아놓은 더미가 있다. 풀을 베어 퇴비를 만드는 거름더미든 벼를 털기 위해 마당에 쌓아둔 나락더미든 더미들은 거기에는 모두 생의 아픈 운동성이 따른다. 그 운동력으로 쌓은 각자의 시산은 자신의 뇌산에 동그라니 남은 병산을 바라보는 시선이며, 병산은 아플수록 높아지기도 하고 완화될수록 낮아지기도 한다. 운동에는 삶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아픔으로 베인다. 병식이 있다는 의미는 자신이 병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는 의미다. 시가 되어가는 글씨는 끊임없이 자아의 검열과 열병식을 치르는 일이다. 병이 들고나듯 완화되었다가 또 다시 깊어질 수 있음은 시인 자신이 표현하는 시적자아성찰이다. 그 일이야말로 낮아지는 일이다.

시에는 치료하는 힘이 있다. 시가 치료하는 힘을 지니는 것은, 시인 자신이 이러한 시적 자아를 의식할 때 자신 안에도 봄앓이를 하듯 꽃을 피우며 거룩한 열병을 앓았던 자신의 상처들을 바라보는 일이다. 자신이 병을 앓고 있음을 인식할 때만 의사를 찾는 겸손함을 들어낼 수 있다. 시를 읽는 독자들도 시를 통해 자신의 병산을 바라보듯 어떤 시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간접적으로 치료에 이르는 길이며 결국은 이 모든 것들이 어느 하나로 합쳐진다는 깨달음은 마치 황동규 시인이 김수영시인의 병산을 바라보며 자아성찰의 향수에 젖는 일일지도 모른다.

시인 황동규의 ‘시월’을 보며, 나 또한 이분의 성찰된 시적자아들과 만나 일상을 살아갈 때 좀 더 겸손하게 살기를 원한다.

<구성 : (사)한국문인협회 김포지부 고문 이재영>

 

김포신문 gimpo1234@naver.com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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