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우리나라 태권도 국가 대표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태권도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한 아이는 ‘김현하’라는 여학생이다.

아이는 등교할 때 가방을 두 개 가지고 다닌다. 하나는 학교에서 수업을 하는 책가방이었고 다른 하나는 운동을 하러 갈 때 필요한 가방이었다. 수업을 마치면 쏜살같이 태권도 도장으로 향하던 아이.

어느날 태권도 대회에 출전한 현하에게 응원 문자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아마 피곤해서 못 읽었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이튿날, 현하가 학교에 왔다. 아직 대회 기간 중인데...

“어, 현하야, 왜 벌써 왔어?”

현하가 대답이 없다. 얼굴 표정이 눈물을 쏟으려는 듯 울먹인다. 씩씩하고 항상 즐겁게 생활하는 아이가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은 처음 봤다. 살펴보니 현하가 다리에 깁스를 했다. 목발도 짚고. 하지만 아이에게는 놀라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수업을 마친 후 현하를 불렀다. “현하야, 왜 그래?”

“선생님, 저 어떻게 하면 좋아요? 어쩌면 더 이상 태권도를 하지 못할 수도 있대요. 어제 시합 도중에 다리를 다쳐 병원에 갔는데 뼈도 부러졌지만 인대도 심하게 손상을 입었대요. 그래서 오늘 병원에 다시 입원해서 검사를 해 봐야 된대요.”

현하가 울면서 이야기를 했다.

“아니야. 괜찮을 거야. 선생님도 어릴 때 다리 부러진 적 있었는데 지금은 멀쩡해. 너무 걱정하지 말고 검사 잘 받고 와.”

아이를 다독거려 데리러 온 부모님과 함께 병원으로 보냈다. 밤새 걱정이 되었다. 태권도가 전부인 아이가 만약 태권도를 더 이상 못하게 된다면...

다음날, 현하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아직 병원에 있나보다 싶어 퇴근 후 현하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갔다. 병실에는 현하가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는 모습에서 현하의 상태를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현하야”

현하가 고개를 돌려 병실로 들어오는 나를 본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을 만큼 아이는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같이 있던 현하의 어머니와 병실 밖으로 나왔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재활치료를 받으면 생활하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앞으로 오랫동안 운동은 힘들 것이라고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뼈와 인대 등의 손상이 심해 재활치료를 받는 데만 거의 1년이 걸릴 거라고 했단다. 그리고 재활이 끝나고 운동을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예전과 같은 기량을 발휘하기는 힘들 거라고... 결국 운동을 그만 두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그 후 현하는 필요한 검사와 치료를 어느 정도 한 후 학교로 나왔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을 무렵 현하도 현실을 인정했는지 학교에서 예전처럼 잘 지내는 모습을 보였다.

“선생님 부탁이 있어요.”

놀랍게도 현하가 나에게 먼저 상담을 요청해 왔다. 방과 후 빈 교실에 마주 앉았다.

“선생님, 저 목표를 바꾸었어요. 저 간호사가 되고 싶어요. 제가 한 달 동안 병원에 있었잖아요. 저 병원에 있는 동안 간호사 언니들이 제게 큰 힘이 되었거든요. 제가 울 때면 와서 위로도 해주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주고... 간호사를 왜 천사라고 하는지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간호사가 되기로 했어요. 저처럼 힘든 아이들이 오면 치료도 해주고 용기도 주는 간호사가 되고 싶어서요.”

“좋은 생각이네. 그런데 부탁은 뭐야?”

“간호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보니 막막해서요.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선생님이 좀 알아보시고 도와 주셨으면 해서요.”

생각보다 빨리 마음을 추스른 것만도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태권도를 잊고 간호사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왈칵 눈물을 쏟을 뻔 했다. 아이가 대견했다.

다음날 나는 현하에게 간호사가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길에 대해서 알려 주었다. 현하와 함께 과목별로 공부하는 방법에서부터 대학 진학까지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웠다. 새로운 목표가 세워져서인지 현하의 눈빛은 태권도를 할 때처럼 빛이 났다. 물론 태권도 선수를 목표로 운동에 집중하던 아이라 처음부터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목표를 바꾸긴 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세운 꿈이 사라진 것에 대한 미련을 이따금씩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워낙 긍정적인 아이였기에 힘들 때마다 스스로 잘 이겨내는 모습을 보였다.

복도를 지나다 보면 선생님의 설명을 뚫어져라 칠판 쪽을 바라보는 모습에 “현하야, 칠판 뚫어지겠다”했더니 “칠판 뚫을 거예요. 선생님”하며 학업에 강한 의지를 보여 나를 기쁘게 했다.

중학교를 마치고 현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고3이 되어 입시를 앞두고 현하가 찾아왔다. 자기 소개서를 한번 봐달라는 부탁을 했다. 거기에는 자신의 지난 사연이 모두 쓰여 있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잘 썼다며 표현이 어색한 것은 좀 고쳐보라는 말을 해 주었다.

얼마 후, 현하는 ** 대학교 간호학과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알려 왔다.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느낄 정도로 아이는 기뻐했다. 나역시 아이가 간호학과에 입학한 것이 너무나 기뻤다.

시간이 흘러 얼마 전, 나는 아이가 희망하던 대로 서울의 어느 종합 병원에 간호사로 취업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태권도 국가대표의 꿈을 못 이루었지만 그만큼 소중한 간호사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다.

현하가 꿈을 이룬 것을 보고 위기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위기는 있다. 하지만 그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 출처 - 조이오투, 『아프게 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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