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형 
안동대학교 명예교수

정확히 32년 전 일이다. 나와 같은 날 대학교수로 임용된 5년 선배 자연과학자 이 교수가 다가왔다. “신 교수, 철학교육은 진짜 중요해요. 열심히 가르치시오. 철학을 제대로 가르쳐 놓으면 국가와 사회가 합리적이 되고 청렴해 질 것이오. 우리가 하는 과학은 열심히 하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기술에 불과하오. 기술은 아무리 훌륭해도 약간 편리한 사회를 만들지, 제대로 된 사회를 만들 수는 없소. 문제는 국가나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오.” 다짜고짜 들이대는 철학 유용론이 당황스러워 그 연유를 물어보았다.

60년대 후반에 대학 입학한 그는 교양필수과목으로서 철학개론을 당시로는 드물게 프랑스유학을 다녀 온 철학교수에게 배웠다. 형이상학을 전공한 교수의 철학 강의는 따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희랍의 7현인 중 하나인 파르메니데스의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라는 강의를 듣게 되자 어처구니가 없었다. ‘철학은 황당하고 쓸 데 없는 이야기라더니 정말 그렇구나.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뻔한 소리잖아. 왜 비싼 밥 먹고 저런 하나마나 하는 소리를 하고 계시지? 정말 한심하다 한심해.’ 이 말 덕분에 철학은 쓸모없는 학문이라는 생각을 굳히는 한편, 이 교수는 자기 전공을 살려 연구에 매진하면서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따 귀국하였다.

연구소에 자리를 잡고 전문연구를 하면서 그는 많은 사람과 일에 엮였다. 고지식하다 할 정도로 순수한 이 학자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유익을 위해서는 사실을 왜곡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현실을 만나면서 맥이 탁 풀렸다. 연구비를 위해 결과를 조작하고, 감사를 위해 있는 것을 없다고 하고, 승진을 위해 없는 것을 있다 없다 하는 현실 앞에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는 원리는 더 이상 진리가 아니었다. 온갖 언사가 동원된 말장난 앞에서 확고한 진리였던 사실들은 바람에 흩날리는 티끌이 되었다. 더구나 연구소의 대형과제는 정책과제인데, 그것은 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한 순수목적보다는 정치편향적인 기준이 끼어들고 그런 기준을 충족시키느라 연구의 과정과 보고는 조작되었고,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는 그의 주장은 현실을 모르는 저급한 기초공식에 불과했다. 덧붙여 이 기초공식에 ‘예, 아니오는 분명히 있다’는 그의 주장은 현실을 모르는 철부지의 견해였다. 그는 그 때 깨달았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는 진리이고, 예, 아니오를 분명히 하려면 목을 내놓아야 한다고. 그래서 그는 당시로는 늦은 나이에 대학교수자리로 옮겨왔다.

사실 파르메니데스가 말한 것은 삼라만상의 사물의 근원은 하나라는 자연과학적 주장이었다. 다양하게 보이는 만물은 사실은 틈이 있어 감각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가짜이고 이성적으로는 틈이 없어 하나로 꽉 붙은 존재가 진짜라는 것이다. 이런 객관적 논리도 비합리적으로 사용되면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우리는 저 유명한 갈릴레오의 ‘하늘을 중심으로 지구는 돈다’는 지동설 이야기를 잘 안다. 갈릴레오는 당시에 정설로 통용된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땅을 중심으로 하늘은 돈다)을 반대하면서 지동설을 제시하자 종교재판에 회부되었다. 그러자 생명을 지키려고 자신의 지동설을 부인하였다. 그러나 석방되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중얼거렸다지 않는가. 이처럼 사실을 있는 대로 주장하기란 어느 때라도 쉽지 않다. 예컨대 현재 더불어민주당 소속 관리나 정치인이 문대통령 앞에서 ‘조국 전 장관은 비리가 있다’(있는 것은 있다) 라거나 ‘한국경제는 사실상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없는 것은 없다)는 말을 쉽사리 할 수 있는가?

선배 이 교수는 그렇게 황당무계하다던 자기의 철학스승을 나에게 두 번이나 회고하였다. 세상현실을 무시하고 진부한 강의를 한 철학교수는 젊은 과학도에게는 쓸모없는 인간으로서 한심한 존재였다. 그러나 수년간 세파를 겪고 고민하는 중견 과학자에게 회상된 철학교수는 변함없는 진리를 설파하는 예언자였다. 이 교수는 ‘영원한 진리는 너무나 뻔한 소리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5년 전 그의 25년 남짓한 교수생활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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