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형
안동대학교 명예교수

과학문명이란 인간이 자연을 모방하여 그 편리함을 확대해 놓은 인간사회의 모습을 말한다. 인류는 다른 생물들과는 다르게 자기의 부족을 극복하려고 상상력을 동원하는 독특한 성질을 갖고 있다. 상상력은 건강한 사람끼리 만나면 과학을 만든다. 그런데 과학이란 상상력을 통해 이전에 없던 발명을 생성하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실상은 자연의 모방에 그치는 것이다. 마치 상상의 동물인 용이 뱀과 불을 한데 엎쳐 놓은 결과인 것과 흡사하다.

상상력은 조물주가 게으르고 나약한 인간에게 거친 자연계에서 생존하라고 선물한 재능이다. 철학적 인간학에 따르면 인간은 가장 약한 동물 중 한 종에 불과하다.

인간보다 빠르고, 날래고, 사납고, 민첩하고, 변화무쌍하여 혹독한 자연계에서 생존을 이어가는 동식물은 널려있다. 인간의 능력은 이런 생존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적합한 생존공간을 차지할 수가 없다. 정처없이 배회하는 인간에게 살아갈 유일한 도구가 상상력이다. 이 상상력을 통해 인간은 자연 속의 요소들을 빼내고 합쳐 자신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기술을 연마한 결과가 과학문명이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란 과학문명의 끝자락에 속한다. 모든 자연계의 마지막 모방으로, 자신을 향한 것이 인공지능이다. 그런데 인간의 인공지능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 열고보니 감당치 못할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사소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성적 일탈로 신세를 망친 청소년마냥, 막상 인공지능의 작업을 시작하고 보니 가상적인 ‘비결정적인 인공지능 시스템’atilects(artificially intelligent non deterministic systems)로 그동안 인류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윤리적인 문제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섹스로봇이나 개인의 자유 침해, 보안문제, 자기 파괴적 오용 등이 그것이다.

인공지능의 핵심적 특성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율적인 인간의 자기 모방이다. 지금까지 모든 자연과학은 인간이 주체가 되고 그 과학기술은 인간의 통제 하에 있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인간 자율의 복제 이어서 자기 모순적 특징을 갖는다. 즉, 인간의 자율이 베껴지기만 하고 그래서 인간이 그것을 조정할 때, 그것은 자율이 아니라 타율이다. 반대로 베껴지는 시작이후에 그것이 인간을 초월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자신을 내어 준 인간의 손을 넘어서 뻗어 나가고, 통제가 아예 불가능할 때 심각한 사태가 발생될 수 있다. 만약 인공지능이 인간과 맞설 때 인간과 인공지능의 전투는 심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런 가상 전투를 우려하는 사람에게 알파고 사건은 엄청난 충격이다. 그런데 왜 이런 상상이 인공지능을 통해 일어날 수 있다고 보는가? 인공지능을 보는 입장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인공지능의 지능화는 결과적으로 인간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다고 보는 견해이다. 대개 공학자들이나이와 관련된 기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이런 견해를 갖고 있다. 우리가 상상하는 고 차원적 수준의 인공지능 개발은 앞으로 수십 년은 지나야 가능한 일이고, 현재의 작동수준은 겨우 빠른 계산에 불과하므로 이를 극복하는 기술개발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둘째, 곧 닥칠 인공지능의 활약은 인간의 모든 영역을 초월하여 인간을 지배하고, 그 결과로 인간이 조종되는 시대가 곧 닥친다는 입장이다. 주로 인문 및 사회과학자들의 우려 깊은 트라우머가 스며든 이 견해는 인공지능의 능력을 과대평가함으로써 나타난다. 아직은 오리무중일 뿐이다.

인공지능의 효과에 대한 견해 차이는 사실 인공지능의‘ 깊이 배우기’deep learning 기능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다. 이미 확보한 데이터를 접합시켜 만들어 내는 구조인 깊이 배우기는 인간 안에서는 상상력이라는 신비적 두뇌운용으로 이루어지지만, 인공지능의 기계는 이를 매우 정교한 알고리즘을 통해‘ 합리적으로’ 만들어낸다. 그 정교함은 놀랄 만큼 설득적이다. 필자는20 여 년 전 <아마존>에서 책을 구매했는데, 서너 번의 책 주문 이후‘ 추천도서목록’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어떻게 나보다 더 내 취향을 알지?’ 눈을 떠 보면, 우리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인공지능 사회에 들어와 살고 있다. 선택할까, 말까, 혹은 싫어할까, 좋아할까 하는 선택과 취향을 넘어,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현실에 우리의 삶은 소속 되어버렸다. 선용의 문제만이 남은 인공지능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