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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감상] 불쑥, 불혹

기사승인 2020.05.20  16:2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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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쑥, 불혹

유정이

길 안쪽에 엎어졌는데
몸 일으키니 길 바깥이었다
어디로든 나갔다 생각했는데
둘러보니 부엌이었다
밥물은 끓어 넘치는데 아이들은
밖으로 나가는 열쇠가 없어
울고 서 있었다
생각을 일으켜야겠는데
오래 입은 옷들이
발을 걸었다 호호호
내가 네 엄마가 맞단다
어서 문 열어주렴 꽁꽁 닫힌
문 속으로도 언제나 불쑥
들어와 있던 엄마가
베란다 바깥 허공을 따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는 엄마를 붙잡아야겠는데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엄마가 내 소리를 파먹은 게 분명해
거실에 넘어졌는데
눈 뜨니 부엌이었다
밥물은 끓어넘치는데
오래 입은 옷이 열쇠를 흔들며
호호호 웃고 있었다. 돌아보니
마흔이었다

시 감상
분명히 어제 설날이라 설빔을 입고 놀았는데, 엊그제 아이가 태어나 백일이라 잔치를 했는데, 어제 대학 새내기 그녀와 첫 미팅을 했는데, 첫 월급을 타서 기분 좋게 친구들과 한 잔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부모님 내복을 사 왔는데, 어제 비가 왔던가? 눈이 내렸던가? 아침에 자고 깨 보
니 불혹을 넘어 미혹이다. 산다는 것은 나도 모를 사이에 드라마가 상영되고 종영되고 다른 드라마의 첫 회가 시작되는 드라마 속이다. 물론 나는 무심한 시청자일 뿐.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김포신문 gimpo1234@naver.com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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