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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70주년, 사라지는 기억

기사승인 2020.06.29  10: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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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전 주역은 고령과 병마로 거동조차 힘들어

올해 70주년을 맞은 6•25전쟁, 당시 사망자 150만 명, 부상자 45만 명 실종자까지 포함하면 약 300만 명의 막대한 인명 피해와, 전쟁고아 10만 명과 약 천만 명의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최근 남•북과 미국이 공동 번영을 위한 화해와 대화 분위기가 잠시 조성되었으나, 결국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채, 살벌한 말싸움을 통한 심각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김포신문은 전쟁 7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6.25참전 유공자회 김병직 김포시 지회장을 만나, 전쟁 당시를 회고하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6.25참전 유공자회 김포시 김병직지회장

Q : 6.25 당시 몇 살이셨는지?

A : 1933년생이고, 17살 때 전쟁이 일어났다. 인천서구 검단이 고향이고, 당시 검단이 김포군소속이었다.

Q : 어떻게 전쟁에 참전하게 되셨는지?

A : 전쟁발발 다음해인 51년에 중공군 참전으로 압록강까지 진출했던 국군이 1.4후퇴를 했다. 이때 전세가 불리하자 병력충원이 필요했고, 고향집으로 징집장이 나와 제 2국민병으로 소집됐다. 김포 제일고에 18세부터 40세 사이 70~80명이 모여서, 부산에 있는 육군 제2훈련소 9기생으로 입대했다.

Q : 어린 나이에 전쟁에 나가셨는데 당시 가정 환경은?

A : 어릴 때 부친이 별세하시고 홀어머니 밑에 장남으로 아래로는 4명의 동생들이 있었다. 세살 위인 사촌형과 함께 입대를 했었다. 당시 날씨가 추워서 어머님이 두꺼운 솜바지를 해주셔서 입었고, 미숫가루를 조금 만들어주셔서 가지고 출발한 기억이 난다.

Q : 부산까지는 기차를 타고 이동했는지?

A. : 인솔자가 있었지만 교통편도 부식도 없이 맨몸으로 걸어서 부산까지 이동했다. 총기도 지급 받지 못했다. 어머님이 만들어주신 미숫가루도 이동 첫날 영등포에 있는 방직공장에서 유숙했는데, 한번 먹고는 도난을 당했다. 정규군이 아닌 상태라 보급이 전혀 안됐고, 모두가 배고플 때다. 큰 마을을 지날 땐 마을 이장을 찾아가 사정해 겨우 잠자리를 제공 받거나 음식을 얻어먹었다. 부산까지 꼬박 한 달을 걸어서 갔는데, 씻지도 못해 옷 속에 “이”가 기생해 어려움이 컸었다.

Q : 부산에 도착해서는 어떤 훈련을 받았는지?

A : 14일간 기초 군사 훈련을 받았다. 총기를 지급받고 각개 전투훈련을 받은 정도다. 훈련이 끝난 후 5월초에 부산동래에 있는 제 2보충대에 배치되었고, 0241541 군번을 부여받았다.

Q : 전선엔 언제 투입되었는지?

A : 중공군이 오산까지 내려오자 대구에 있는 8사단에 배치되었다. 8사단은 전쟁 중에 본래 부대에서 떨어져 나온 병력들을 다시 모아서 만든 부대인데, 지리산에 숨어있는 공비를 토벌하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 그런데 당시 국군에서 사용하던 총기가 미군이 사용하던 M1소총이었는데, 내가 키가 작아 총알을 장전하기 위해 총기 노리쇠를 당기려면 발을 사용해야할 정도 였다. 이를 점검하던 부대장이 전투병력에서 열외를 시켰고, 결국 제대로 된 전투에는 참여하지 못한 셈이다.

Q : 제대 후 귀가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경북 청도에서 걸어서 귀가하다 운이 좋게 중간에 트럭을 얻어 타고 안산까지 왔다. 덕분에 보름만에 집에 도착했다. 어머님은 죽은 아들 살아왔다며 울면서 기뻐하셨다. 면사무소에서 광목 한필을 위로물품으로 받았다.

Q : 회장님께 당시의 생생한 전쟁사를 취재하고 싶었는데

A : 전임 회장님은 상이군인이셨다. 전쟁에 나가 파편이 몸에 박혀 몸이 불편하셨다. 전쟁 발발한지 70년이 되었고, 김포 6.25참전 유공자회 회원이 5월말 현재 644명인데, 내가 88살이지만 제일 어린 회원이다. 회원들 대부분이 고령으로 움직이기조차 힘든 실정이다.

Q : 국가로부터 어떤 지원을 받고 있는지?

A: 정부로부터 매월 32만원을 유공자 수당으로 지급받고, 김포시로부터 참전자수당 5만원 명예수당 5만원 받고 있다. 그리고 보훈병원으로 지정된 김포우리병원에서 진료받으면, 치료비 90%는 정부가 보존해주고 있다.

Q :정부나 시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 6.25 참전은 당시 국민이라면 피할수 없는 구국을 위한 방편이었다. 월남전 참전과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고 본다. 2012년 김포시에 건립된 현충탑에 새겨진 참전용사명단을 보면 구분없이 “참전용사”로만 되어 있다. 김포시가 좀 세심하게 6.25 참전자들을 배려했으면 한다. 그리고 고령인 6.25 참전자에게 지급되고 있는 수당을 국가나 김포시가 상향해줬음 하는 회원들 바램도 있다.

Q : 전쟁에 대해 후세에 말씀해주신다면

A : 전쟁이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3년 동안 약 300만명이 희생되었다. 온 나라가 잿더미가 되었다. 두 번 다시 이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아직 전쟁에 참전한 생존자가 있는 상황에 6.25가 북침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이 언론을 통해 나올 때마다, 지난 과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또다시 전쟁이란 참혹한 역사가 이 땅에 재현될까 두려운 생각이 든다.

 

6.25전쟁을 책이나 매체를 통해 접했던 기자는 내심 6.25 참전 용사와 만남을 통해 당시의 참혹했던 전장을 직접증언으로 경험하고 싶었다. 전쟁발발 70년이 지난 지금 참혹했던 전장을 증언할 용사들 대다수가 돌아가시거나 은퇴를 했고, 후방에서 지원 업무를 했던 어린 군인들만 6.25참전 유공자회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국가를 위해 목숨 바쳐 헌신한 6.25 참전용사들에 대한 진정한 예우를 생각해보고, 노병의 말처럼 “이 땅에 두 번 다시 참혹한 전쟁이 재발하지 않도록” 모두가 노력해야겠다.

박성욱 기자 gimpo1234@naver.com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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