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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의 큰 인물 지다

기사승인 2020.07.15  16:4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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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운 발행인

보건의학계 개척으로 큰 역할을 하시고 서울대 총장, 성균관대 이사장 등 학계와 환경처, 보건사회부, 문교부 장관 등을 두루 역임하시고 서울평화상 문화재단 이사장을 끝으로 숱한 경륜을 마감하신 ‘故 권이혁 님’의 영전에 김포의 후배가 존경의 표시 글을 올립니다. 언제나 감사했고 지금도 감사합니다.

1923년 7월 13일 출생, 2020년 7월 12일 서거. 97세를 꽉 채우고 돌아가셨다. 22세의 청년이 되기까지 일제 강점기의 험한 세상에서 어린시절을 보내셨다. 당시에는 교통편이 버스도 없는 세상이라 하성의 포구에서 밀물 때 배를 타면 마포까지 갈 수 있는, 배가 유일한 조선시대 교통의 세대라 할 수 있는 시기인 100년 전에 태어나시어 서울까지 통상 걸어서 다니는 도보 일상의 젊은 시대라 걷는 데는 항상 자신 있었다고 회고하셨다.

만년이 되어서도 척추협착으로 다리가 저린 것 외에는 그 흔한 당뇨, 혈압도 정상인 건강함을 유지하시었고, 83세 때인 2006년 에세이집 여유작작(餘裕綽綽)을 쓰실 때의 의지인 매년 1권씩의 에세이집을 내시겠다는 약속을 지켜내신 걸 보면 기억력이나 남다른 총기가 건재하셨다.
생전에 뵈올 때는 언제나 김포 걱정, 김포가 잘되기를 말씀하셨고, 흔쾌히 김포신문사 고문을 허락하시고 10년간 김포신문사 고문을 맡아주시며 김포신문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역할과 사명을 잘 해간다며 만날 때마다 격려해주신 온화한 얼굴이 떠오른다.

“심신(心身)이 건강하려면 일상사를 서두르지 말고 침착하고 유연하게 대처하고 마음의 안정으로 정신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하고 여유작작하며 강한 추진력이 생겨난다며 욕심 내면 화를 부르고 스피드한 세상이라고 덤비면 매사 그르치기 십상이다”라고 생활의 자세를 훈수하셨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 사회에서 무슨 쓸모있는 일을 하겠는가!”라는 경귀도 주셨다. 중학교 시절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 쓰기 덕분에 에세이집도 평소 하나씩 생각한 것을 기록하여 연말이 되면 책 한 권이 되었다고 자랑하시며, 밤 12시 뉴스를 보고 자는 것이 습관이 되어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하시어 “저도 그렇습니다”하니 이명박 대통령이 “early-bird가 아닌 사람은 loser(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먼저 잡는다, 늦게 일어나는 사람은 부족한 사람이라는 말)”라고 한 말은 자신이 부지런하다는 말을 우회표현했지만 경솔한 말이라며 “나는 아침에 일어나 신문의 헤드라인만 대충 훑어보고 저녁에 집에 오면 관심 부문을 읽었다”고 하시면서 나이가 드니 수면장애의 문제가 있어 숙면을 위해 수면제를 활용하신다며 경험해보니 잠을 못자는 것보다 약에 의존한 수면이 건강에 더 낫다라는 걸 아셨다며 주변 어른들에게 전파해도 무방하다 말씀하시며 요즘은 약들이 좋아져서 약의 내성 문제가 없다고 하셨다.
에세이집 출간 시작 10년 후인 2015년 서문에서는 노화현상이 심화되고 상상력, 기억력, 기력이 떨어지는 사실을 매일같이 느끼고 있음을 고백하시며 더 이상 집필에 고집하지 않고 유유자적(愉愉自適)한 인생을 지내시겠다고 심경을 밝히셨다.

보건의학분야에서 대한민국의 큰 별임에 틀림이 없고 서울대 총장 모임에서는 “항상 나이 많은 내가 건배사를 한다”며 후배들이 먼저 세상 떠남을 아쉬워하셨다. 보건사회부장관 시절 ‘둘만낳아 잘 키우자’는 산아제한 정책이 요즘처럼 아이 낳기 절벽의 시대가 올 줄 몰랐다 하시며 당시의 정책을 그때는 옳은 방향이라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후회스럽다고 회고하셨다.

지금의 김포대학도 당시 문교부장관 시절에 유치되어 종합대학으로 갈 줄 알았는데 아쉽다 하시며 향후 종합대학으로 가도록 김포시민이 의지를 모아야 한다며 배움의 전당이 왜 중요한지를 설파하시곤 하셨다.

세계결핵 제로 운동본부 총재를 하실 때도 “북한에 생각보다 많은 결핵 환자들 있다”하시며 같은 민족으로 크게 걱정하시며 남북한이 사이좋게 지내는 걸 보는 것도 소원 중의 하나라며 의료지원이 절실함을 토로하셨다.

세상에 지으신 많은 업적·공로들과 더불어 수많은 사회활동을 맡았다 하면 왕성히 일에 임하신 정열과 수많은 사람들과의 좋은 인연을 그들의 기쁨과 희망과 성공으로 이어주는 교량 역할로 평생을 보내신 김포의 큰 어른 권이혁 님께 삼가 졸필이나마 존경의 마음으로 글을 올립니다.

또한 만년의 총장님께 일상의 불편과 도움을 챙겨주신 권성택 따님의 지극한 보살핌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박태운 gimpo1234@naver.com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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