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제자

                                      문성해

눈 밑 애교살 많은 사십 대는 바라지도 않지만
시집 좀 읽으시라 하면
백내장 수술한 눈이 아프다 하시고
인생사 좀 삐딱하게 보시라 하면
성체 모시는 몸에 고해성사할 일 있냐고 하고
설겅설겅 메주콩 밟듯 시를 써 가지고 와서는
당체 오뉴월 낮 길이보다도 시가 늘지 않는

나하고 이주에 한 번 밥 먹는 한정식 집에서는
혀로 게장 하나는 나보다 더 잘 발라내고
공모전 입상이라도 하나 되면
동남아 여행으로 모시겠다 하고
가끔씩 대책 없는 나의 노후도 걱정해 주는

사는 게 이제 더는
새로울 것도 궁금할 것도 없다는
예순아홉
나의 제자는

시 감상
내게 시를 배우는 분들이 가끔 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나는 그분들에
게 시 기술을 알려주고 내가 그분들에게 시를 배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 골프 한 번 치는 것과 새벽마다 운동하는 것과 시를 쓰는
것의 차이가 무엇일까 생각하다 문득, 가을이 저 멀리 도망가는 것을
본다. 스승과 제자는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서로를 공부하는 것이다.
변수 많은 삶의 방정식을 푼다기보다는 맛보는 정도로만.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프로필] 문성해 : 매일신문, 경향 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내가 모르는 한 사람]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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