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형
안동대학교 (철학)명예교수

요즘 구순이 가까운 장모님을 모시고 산다. 이만큼 연세 드신 분들은 예외 없이 온몸이 병상이다. 평생 겪은 풍상이 신체 구석구석에 생채기를 꼼꼼하게 새겨왔기 때문이다. 식민지 고초와 전쟁의 참화 다자녀와 평생을 따라 다닌 가난은 매일 그네들을 전쟁터로 내몰았건만, 바빠서 돈이 무서워 남 우선의 희생으로 풀뿌리 같은 생명선만 지켜 온 것이다. 노파들이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한숨과 신음뿐이다. 

고통으로 얼룩진 그네들의 몸뚱이는 초고속 한국현대사의 산 증거물이다. 자손들은 그들 덕에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며 선진국 문명을 즐기건만, 그들은 고통을 안고 오늘도 시골병원을 기웃거린다. 

자녀들 앞가림을 끝내고 비로소 치료를 시작했다. 오랜 치통 끝에 치과병원을 전전하다가 결국 대학병원에서 통째로 망가진 잇몸을 세우는 일을 수년에 걸쳐 했다. 허리가 90도로 꼬부라진 채 수 십년을 버티다가 년 전에 수도권의 명의를 찾아 협착증 수술을 했지만 잠깐의 안식기 후 허리는 여전히 전쟁 중이다. 작년 이맘때 육십 여년을 해로한 장인을 여의었다.

하루아침에 돌아가신 망자의 행복은 허무한 장모님에게 우울증을 선물하였다. 김포와 서울의 유명한 병원들을 드나들었더니 처방받은 약이 졸지에 눈앞에 그득하였다. 물론 십여 년 전부터 처방받은 약도 장모님은 빠짐없이 챙기셨다. 순간순간 닥쳐오는 고통 때문에 약에 대한 장모님의 집착은 말할 수 없이 컸다. 

하지만 통증과 불안 증세는 줄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몸은 흔들리고 턱관절이 으득거리며 떨기 시작하였다. 혀가 말리고 말소리가 흐트러져갔다. 나가시던 노인유치원을 휴가내고 동네치과에 들렀다. 재치 있는 치과의사가 손을 멈추고 ‘큰 병원’을 추천했다. 최고의 치과대학 병원으로 갔다. 조사결과 치과 병이 아니라고 판명되었다.

의료인이었던 아내는 참고문헌을 뒤지더니 파킨슨병으로 의심된다고 했다. 최고의 대학병원 정형외과와 정신과를 찾았다. 같은 소견을 갖고 몇 가지 검사를 한 의사는 파킨슨 병이 아니라고 판명했다. 그렇다면 뭐냐고 물으니 아직 모르겠다고 했다. 세상에! 병은 있는데 그 병이 뭔지 모르다니! 이게 최고의 병원이고 의료진인가, 회의가 들었다.

궁여지책으로 한방병원으로 향했다. 공교롭게도 눈사태가 난 날이라 그런지 병원복도는 텅 비고 환자들은 한 사람도 없었다. 평소에 불신하던 한방 의료에 더욱 의심이 갔다. 그런데, 그런데, 거기에 답이 있을 줄이야! 젊은 한의사가 병세의 정황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한 마디로 처방을 내렸다. “약물 중독입니다!” 
“제가 해 드릴 것은 없습니다. 이제부터 모든 약을 끊고 2주 정도 두고 봅시다. 괜찮아 질 겁니다!” 이전에도 그런 사례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 순간 깨달음이 왔다. ‘맞다. 그 오랜 세월을 쭉 화학약품을 질과 양을 올리면서 약한 노파의 몸에 퍼부어왔으니, 이제 몸이 최후로 저항하는 것이다!’ 몸을 생각하기보다는 병증세에 따른 기계적인 처방으로 약을 받아 2중 3중 복용하니, 약과 몸의 부조화에다가 약 상호간
의 중첩되는 역기능을 고스란히 받아내던 몸이 쓰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간에 약 눈치가 있는 아내는 중첩처방을 알고 약을 가려 줄이기는 했지만, 약을 고집하는 장모님을 설득하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이 명의의 처방은 적중했다. 며칠의 고통스런 금단현상을 지나 몸은 바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턱은 떨지 않고, 발음도 분명하고 우렁차게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젊은 의사가 명의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장모님의 상태를 직시하여 바른 처방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환자의 해결책으로 약물을 더 보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덜어내어 증세의 근원을 해소시킨 명의였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문재인 정부의 주택정책은 스무 번 이상의 대책을 내놓았지만, 철저히 실패하였다. 모든 국민의 반발을 사고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라버렸다. 문제가 무엇인지를 몰랐을 뿐만 아니라, 그래도 자신들이 옳다는 자만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선 욕심을 내려놓고 문제를 직시하는 눈을 길러야 한다. 제대로 된 해결책을 제시하는 이 한의사에게서 한 수 배워야 할 것 같다.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고 해결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노자(老子)는 말한다. 
“방법이라고 방법이 아니고, 이름이라고 이름이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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