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목사의 자전적 에세이-7

박영준

김포중앙교회 원로목사

나는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소년시절부터 교회에서 찬양대를 했고 계명 창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음을 바로잡을 줄 알았다. 입대하기 전에 교회에서 찬양대 지휘를 한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어 훈련소 연대교회에서 찬양대 지휘 봉사를 했다. 보통 연대 훈련병 병력이 3,200명 정도 되는데 매기마다 주일예배를 드리러 나오는 훈련병 신자가 약 400명 정도 된다(지금은 소 본부 교회를 대형으로 건축하여 예배드리므로 연대교회가 없음).

주일 아침 9시경이면 각 중대에서 주번병들이 신자들을 인솔해 오면 50평 정도 되는 콘크리트 예배당 바닥에 바싹바싹 다가앉아 가득 차게 된다. 예배 20분 전쯤 앞에 나가서 ‘입대 전에 본 교회에서 찬양대원으로 봉사하던 훈련병은 앞으로 나오라’고 하면 약 40명 정도가 나온다. 그러면 그들을 예배당 밖으로 나오게 해서 연습을 시키는데 멜로디와 테너, 베이스별로 파트 연습을 한 번 하고, 첫 음을 잡아주고 지휘를 하면 그대로 3부 합창이 나온다. 지난 주일까지 본 교회 찬양대에서 봉사하던 사람들이고 어느 정도 자신이 있으니까 앞에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힘든 훈련 중이니 심리적으로 간절함과 열심도 있었다. 그렇게 1년 반 정도 찬양대 지휘 봉사를 했다.

토요일 오후와 주일 오후, 훈련병들이 쉬는 시간에는 각 내무반을 순회하면서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는 훈련병들의 상담자가 되어 그들의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서 상담해 주고 위로와 격려를 해주었다. 만약 그 당시에 내가 앞으로 목회할 계획이 있었다면 더욱 구체적으로 상담자 역할을 했을 텐데 그때만 해도 목회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어떻든 그때 그 일은 보람이 있었다.

훈련소에서 군대생활한 것이 내게는 많은 추억거리를 남겨주었다. 남자들이 모인 곳에서 군대생활 이야기를 빼면 할 말이 없다는 말도 있는데 나에게도 잊지 못할 일들이 많다. 상병 시절 우리 연대에 차인태 소위(전 MBC TV 아나운서)가 정훈장교로 부임해 왔다. 그때 마침 육군 2군사령부주관 군가경연대회가 있어서, 우리 제2훈련소에서도 출전하게 되었는데 차인태 정훈장교가 연세대학교 음대 성악과 출신이기 때문인지 내가 복무하는 25연대에서 제2훈련소 대표로 출전하게 되었다. 그래서 연대교회 사병 중에서 6명을 중창단으로 조직하여 연습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었기 때문에 노래도 새마을 노래였다. 지금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노래로 제목은 ‘잘 살아보세’였다.

 

1절.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금수강산 어여쁜 나라 한마음으로 가~꾸어 가면

알뜰한 살림 재미도 절로 부귀영화도 우~리 것이다.

2절. 일을 해보세 일을 해보세 우리도 한번 일을 해보세

대양너머에 잘사는 나라 하루아침에 이~루어졌나.

티끌을 모아 태산이라면 우리의 피땀 아낄까보냐

3절. 뛰어가보세 뛰어가보세 우리도 한번 뛰어가보세

굳게 닫혔던 나라의 정문 세계를 향해 활~짝 열어

좋은 일일랑 모조리 배워 뒤질까보냐 뛰어가보세

후렴.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우리는 일과 후면 모여서 열심히 연습했고,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대구의 어떤 넓은 강당에서 대회가 열렸는데 군인답게 열심히 힘차게 불렀다. 그때 상황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그렇게 큰 무대에 서보기는 처음이었고 관중석에는 1,000여 명의 군인들이 가득한 가운데 제일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한쪽에 정복 차림을 한 여군들이었다. 그 여군들을 바라보면서 더 열심히 했는지도 모른다. 강당에 모인 사람들은 남자와 여자로밖에 어떤 사람이 왔는지 어떻게 생긴 사람들이 모였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다만 군인들만 모인 것은 확실하다.

그 대회에서 우리는 당당하게 1등을 하고 부대에 귀대해서 연대장실에 귀대 보고를 하러 들어갔더니 연대장께서 칭찬을 하면서 “너희들, 제대하고도 중창단을 만들어서 활동해봐라”고 하면서 훈련소장 지시에 의해 포상휴가를 한 주간 받아 집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리고 차인태 소위는 그 당시 새로 개국된 제2훈련소 방송국 아나운서 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제대를 하고 얼마 후부터 MBC TV 방송국 아나운서로 브라운관에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후에 서울 영락교회 시무장로로 사역할 때 전화 통화를 했고 지난달에도 일산에 사는 그분과 통화를 했다.

제대한 후 군가 경연대회에서 불렀던 ‘잘살아보세’ 노래를 열심히 부르면서 새마을 운동을 할 수 있었으니, 새마을 운동은 빈민국에서 세계 10대의 부강한 나라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세계적으로 지원받는 나라에서 지원하는 나라가 되는 역사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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