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목사의 자전적 에세이16

박영준

김포중앙교회 원로목사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을 졸업하고 내 인생 여정의 길을 바꿔 주신 사모님을 찾아갔다. 강덕률 교장선생님께서는 마송초등학교를 떠나 여주군 대신초등학교로 전근하셔서 방학 때마다 시간을 내서 찾아가 인사를 드렸는데 이번에는 사모님의 둘째 딸에게 청혼하려고 찾아간 것이다.

사모님께는 딸만 네 자매가 있는데 첫째는 결혼을 했고, 둘째는 내가 서울로 올라갈 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나는 사모님께 “둘째와 결혼하고 싶으니 허락해 주세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사모님께서는 한마디로 단호하게 거절하시는 것이 아닌가. “안 돼요. 안 돼.” “네? 저는 수년간을 둘째를 생각하며 졸업할 때를 기다려 왔습니다. 이제 학업을 마쳤으니 결혼을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했으나 사모님은 완강히 거절하시면서 “목회자의 길이 얼마나 힘든데, 우리 둘째는 알다시피 지병이 있어 사모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니 안 돼요.”

둘째는 부모님을 닮아 키가 크고 인품도 좋았고 내가 교회 봉사를 할 때 고등학생이면서 나를 잘 따랐다. 그런데 특별한 증상은 없었으나 유전적인 질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나는 후에 그 사실을 알았지만 요즘 세상에 결핵쯤이야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동안 여러 사람들의 중매와 청혼이 있었어도 거절하다가 학업을 마친 후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더니 어머니께서도 좀 언짢아하셨지만 내가 이미 그렇게 결단을 내린 것을 아시고는 허락해 주셨다. 이에 찾아가서 말씀을 드렸던 것인데 사모님의 너무나 완강한 거절에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해 여의도제일교회에서 사역하던 중, 여름 교육부 행사를 모두 마쳤을 때, 우리교회 여전도회원들 간에 노총각 전도사를 장가보내야 한다는 말들이 오갔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본 교회에 숭의여자중학교 교감으로 있는 김원배 장로 부인 김 권사께서 나에게 맞선을 보라고 하는 것이다. 그 당시 나는 대방동에 방 하나에 누이동생과 함께 지내고 있었는데, 내게 만나라고 하는 아가씨는 성남중고등학교 교사인 최승립 선생님의 2남3녀 중 맏딸이며 숭의여전을 졸업하고 당시 건국대학교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고 있었다. 실은 부모님들께서 내가 설교하는 예배시간에 오셔서 나를 보고 가셨다고 한다.

나도 이제는 결혼할 대상자를 찾아야겠기에 만나겠다고 대답했더니 동네 작은 다방에서 만나도록 해 나는 약속시간 전에 나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남자 어르신과 함께 아담한 아가씨가 들어와 인사를 하고 앞에 앉았다. 처음 만나는 순간이지만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 마치 본 교회 교회학교 교사를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밝은 모습은 첫눈에 내 마음을 끌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대화를 하면서 내 마음을 주고 싶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오신 아버지는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두 사람이 대화해 보라 하시며 나가셔서 둘이 앉아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헤어졌다. 그 후 김 권사님이 내게 “만난 소감이 어떤가요?”라고 묻기에 나는 “편안한 마음이었고 좋았습니다.”라 했더니 “그럼 속히 잘되도록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후 우리의 결혼은 속전속결로 추진돼 1977년 9월 1일에 맞선을 본 후 그달 24일에 약혼을 했다.

약혼하고 며칠 후 시골집에서 인삼을 캔다고 해 약혼녀와 함께 내려왔는데 집에 오니 어머니는 인삼밭에 가시고 안 계셔 둘이 손을 잡고 인삼밭으로 산길을 걸어가는데 마침 지나가던 옆집 아주머니가 나를 쳐다보면서, “결혼할 아가씬가요?”라고 묻는다. “네!” 하니까 “그래요? 참배 같네!”라고 하며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서서 물끄러미 쳐다보셨다. 아마도 아가씨가 신선해 보인다는 말이겠다. 노총각이 결혼한다니 이웃들도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때 내 나이가 만 33살.

결국 어머니는 인삼을 팔아 결혼 예물을 마련해 주셨고, 1977년 11월 6일에 여의도 제일교회당에서 조성국 목사님의 주례와 직전에 사역했던 신흥교회 김광훈 목사님의 기도와 신부 측 담임이신 대방교회 임병준 목사님의 축도로 만 25세의 아가씨 최승희와 결혼했다. 나의 결혼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셨던 영등포 박소아과 원장 부인이신 백 권사님은 비단이불 한 채를 손수 만들어 신혼방에 들여놔 주셨다. 그렇게 달콤한 신혼생활이 시작되었다.

“아,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므로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 그리하여 남자는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한 몸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창세기 2장 23,24절)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 이것이 가정을 향한 조물주의 설계 목적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가정 설계의 첫 번째 그림은 ‘하나됨’에 두어야 한다. 육체의 하나됨, 마음의 하나됨, 영혼의 하나됨이 있어야 한다.

그다음 해 1월 이문동 중랑제일교회로 이사해 사역하던 중 첫째 딸 인(仁)이와 둘째 아들 주석(柱碩)이를 낳아 온전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으며 저들이 잘 자라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으니 다만 하나님께 감사드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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