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형
안동대학교
(철학)명예교수

미국의 공상과학 소설가인 닐 스티븐슨은 <폭설>snow crash(1992년 간행)이라는 책에서 ‘메타버스’ 라는 개념을 도입하였다. ‘메타’는 배후라는 뜻이고, ‘버스’는 우주라는 말이니, ‘메타버스’는 배후의 세계라는 표현이다. 세계는 앞모습과 배후가 있다. 배후는 잘 차려진 앞모양과는 달리 무질서하게 일그러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한 도시의 모습은 멋진 거리에서도 보이지만, 뒷골목에서도 그 진면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두 곳은 한 도시를 동시에 말하지만, 그 얼굴은 상반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얼굴이 서로 다른 것은 그것이 드러나는 방식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을 오늘날 플랫폼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사고방식 플랫폼 구성은 20세기 중반까지도 앞모양 차림에 집중되었다. 생각을 말로 하고, 말을 글로 적고, 글을 논리적이고 수리적으로 체계화하여 합리적 모습으로 세상을 만들어왔다. 이것은 3차원적 공간으로 구성된 기존의 문명 세계, 즉 유니버스였다. 우리의 생각은 오로지 이런 방식으로 표현되었고, 이를 당연시하였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영국의 앨런 튜링은 기계를 만들어 인공지능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하였다. 인공지능의 표현은 2차원적으로 이루어진다. 2차원적이지만 3, 4차원의 콘텐츠를 만드는 가상공간 즉 메타버스의 플랫폼을 구성한다.

이런 아이디어의 실현을 위해 컴퓨터가 만들어지고 1990년대 빌 게이츠를 통해 소프트웨어가 생활의 중심으로 뛰어 들어오면서 유니버스는 바야흐로 메타버스와의 공존을 사실상 이루었다.
2000년대에는 ‘포켓몬 고’를 통해 두 가지 우주가 공존하는 현실을 경악스럽게 조성하는 경험을 맛보았다. 최근 미국과 한국에서는 인터넷 기업이 기존의 공룡기업들을 조소하듯 경이적인 매출을 통해 메타버스의 가치를 실증해 보인다. 

메타버스란 가상과 현실이 공진화하고 그 속에서 사회, 경제 및 문화의 활동이 이루어지면서 가치를 창출하는 세상을 말한다. 즉, 인터넷 기업은 과거의 기업들이 보고 절대시한 유니버스뿐만 아니라 가상 세계의 존재를 인정하여 양 세계에 맞는 플랫폼을 구축함으로써 양 세계의 효용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니 경쟁의 결과는 뻔하다. 마치 단일 부품만 생산하는 기업과 부품과 완제품을 동시에 만드는 기업은 그 양과 질에서 경쟁력이 같을 수가 없는 것과 흡사하다.
문제는 우리의 눈이다. 2차원의 컴퓨터 화면을 단지 2차원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유니버스의 한 시민에 불과하다.

그러나 컴퓨터 화면에 뜨는 가상공간을 현실의 공간과 같이, 아니 그 이상으로 여겨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꿈쟁이는 가상공간에서 펼쳐지는 메타버스의 시민이다. 메타버스의 시민이 착목하는 세계는 현재도 확장되는 메타버스의 세계이다.

이 신천지는 새로운 세계를 기대하며 새로운 식민지 개척을 추진하는 탐험가의 플랫폼이다. 재미있는 것은 메타버스의 신천지는 콜럼버스가 발견한 신대륙과는 달리, 미지의 세계일 뿐 아니라, 미정의 세계라는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그 세계의 크기는 가늠할 수도 없고, 가늠할 필요도 없다. 오직 탐험할 열정과 탐험에 필요한 지식을 갖고 나서야 한다.메타버스를 대하는 태도는 대략 두 가지로 나타난다. 신세계인 메타버스에 빠져 현실 세계를 등한시하는 것이 하나이고, 반대로 메타버스를 무시하면서 현실에서 안주하는 것이 또 하나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 문제시되는 가상화폐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양극단은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것에 혈안이 되어 투기 광풍에 합류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전 재산을 쏟아붓는다. 반면에 그것은 신기루일 뿐이라고 단정하고 이에 합류하는 것을 죄악시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회피하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가상화폐는 탈중심화이고 복제 불능의 장점이 있는가 하면, 은밀성을 통한 범죄화의 단점도 동시에 갖고 있다.  이를 고려한 활용이 관건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의 우주는 메타버스와 유니버스의 플랫폼이 공존할 것이다. 따라서 바람직한 인류의 평화가 보장되는 우주, 즉 양 세계를 최적화한 변곡 정류장을 갖는 증강현실의 세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가 꿈꾸는 메타버스의 콘텐츠를 끊임없이 나누는 소통의 대화가 일상화해야 할 것 같다. 이런 대화가 가능한 자유로운 플랫폼을 계속 유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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