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슬픔을 꺼내 든 이유

 

김지명​

 

깃털이 떨어져 있다 밤의 겨를이 떨어져 있다 잉크 찍어 편지 쓰던 깃털이 모자 쓴 추장이 되는 깃털이 떨어져 있다 빛이 떨어지자 어둠이 두루마리로 감겨 겹을 더한 겹 속 내용증명에는 파란 눈의 살쾡이가 야행성 하루를 시작했을 것이다 수목원에서 울던 새들은 내일에 쓸 필터를 교체하러 둥지로 가고 나무는 떨어지는 고요로 천 개의 이파리 눈을 닦고 있었을 게다 어둠은 소박해 누구에게나 도착하고 누구에게나 도착하지 않을지 모른다 조등 같은 모과가 간신히 어둠을 말릴 뿐 잠에 빠진 세상에는 곁이 없다 모과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깃털 하나 깃털 둘의 묘비가 안녕 안녕 떨어져 있다 나무는 새가 반려한 깃털에 대해 어젯밤 아르고스의 눈을 반환한 기억에 대해 설명이 필요하다 총 가진 야생이 새를 몰고 갔다 처참이 팔딱거릴 새가슴 볼 겨를도 없이

 

 

 

[시 감상]

본문과 상관없이 시제가 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침과 슬픔의 인과 관계는 저녁이라는 매개체를 수반하는 일이다. 저녁은 종종 슬프다. 서둘러 낮을 몰아낸 효과다. 오지 않을 것 같은 아침을 손에 쥐고 있는 이유다. ‘겨를’, ‘처참’, ‘조등’이 모든 소박하지 않은 단어들에게 캐묻다 보면 나만의 아침이 슬픈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결국 슬픔을 꺼낸 것은 아침이 아닌, EGO(나)라는 사람이다. (글/김부회 시인, 평론가)

 

 

 

[프로필]

과기대 문창과, 2013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집 <쇼펜 하우어 필경사>, <다들 컹컹 웃음을 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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